𓆝 날치

인어의 별, 넬



15

in Noir Tense, Sex Tension

수위 묘사는 없지만 성적 은유들이 있습니다

2019. 09. 06. 4400


1


 뭍에서 헐떡이는 물고기의 죽음을 본 적이 있는가 물을 벗어난 자의 비참한 최후 허락되지 않은 것을 갈망한 죄는 창염의 온도로 높아 잿더미의 결말은 필연이다 하나 소사燒死의 마지막을 알면서도 암흑 속에서 사랑을 꿈꾸었다 폐어들의 폐허 속 우리는 아가미로 호흡한다



2


 계절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낭만이니 하는 이름의 총천연색 감정은 무채색의 세상에 쉬이 빛 바랜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 어른의 사회를 겪기만 해도 탈색되는데, 기억의 시작부터 누아르 Noir 필름의 인생을 걸어온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세상에선 색이 빠르게 소멸한다. 색이 빠지고 이성과 본성으로만 혼재된 육신은 계절 변화에 의외로 민감하다. 감성이 결여된 만큼 객관으로 점철된 감각은 일종의 생존기제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진행되는 모든 도박에서 777 잭팟을 울리기 위한. 그러니 환경을 왜곡하여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부터 청부업자의 생명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삶에 예술이란 심장에 단 한 방울만 퍼져도 죽음에 이르는 맹독이다.


 해는 삼 분기를 넘기고 있다. 날은 차지 않다. 시간이 세 번째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겨울의 고장이겠으나 아직 새 지평까지는 거리가 남은 듯 추위는 기색이 없다.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를 밟고 선 열여덟 끝물 과도기의 계절이다. 아직 해가 따갑게 내리쬐는 탓에 피부든 과일이든 양지에선 살아 자라는 것들이 익는다. 그러나 빛이 들이치지 않은 곳에서는 바람이 스칠 때마다 쌀쌀함이 살갗을 감는다. 그런 나날이다. 온 주위가 증기로 엷게 덮여 수중에 있는 착각을 부르던 여름, 더위를 지나온 공기는 깨끗하기 그지없다. 그늘 속 찬 가을 공기는 이제 질척임 하나 없이 청량하다. 헌데 숨을 마시면 폐부가 답답했다. 물이 들이차는 듯 무거운 호흡에 익사할 것 같아 심장 위를 부여잡는다. 박동의 간격이 짧았다. 왜곡이다. 우리는 뭍에서 아가미 호흡을 하고 있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감각의 고장에 불현듯 죽음을 직감하여 화장火葬의 환각을 맡는다. 코 끝을 스치는 건조함이 재의 탄내로 쓰다. 우리는 죽어 시체의 삶을 살고 있다.



3


 러브킬이라는 말은 꼭 복상사 같잖아.


 웃음의 이유는 조금 전까지 나누던 화제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웠다. 열 번이 넘는 만남 중에서 가장 앞쪽에 위치한 과거의 기억이다. 네 타깃은 나, 내 타깃은 너. 완벽한 승리공식은 결국 모두가 패하는 것과 동일함을 깨달았을 때 남자는 허탈감을 느꼈고 여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높은 웃음소리 뒤에는 수위 짙은 농담을 이었으나 경박함은 없어 오히려 일종의 고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남자는 긴 암흑을 살아오는 동안 타인에게서 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는. 여태껏 수없이 많이 찾아왔겠으나 전부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첫 이라는 단어의 맛을 느꼈을 때, 그는 자신의 감각에 오류가 생겼음을 느꼈다. 시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누아르Noir 필름의 엔딩 크레딧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 감독은 모르겠으나 캐스트CAST라면 생각해 둔 바가 있다. 우리의 배역은 왕자에게 버림받아 물거품이 될 인어 한 쌍. 수많은 결말들을 뒤져 보아도 양극의 바다에서 지느러미의 반신을 달고 있는 한 해피 엔딩이란 있을 수 없는 짝. 테이코帝光의 조직원 키세 료타와 연합의 주축 센하라千原 소속의 유즈하라 유카리. 두 인어의 목숨에 연관된 왕자의 캐스팅은, 비록 왕자라기보다는 제왕에 걸맞는 사람이지만, 테이코의 보스 아카시 세이쥬로임이 확실하다. 부레를 가진 몸으로도 어떻게든 사람들의 사회에서 살아보려는 인어와 달리 그는 고유한 두 다리로 견고히 서 있다. 하나 키세는 비밀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증오한다. 인생은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다. 그러니 「인어 공주」에 희망 없는 각색을 가해 보자, 지느러미를 다리로 바꾸는 기적은 없다고. 자신을 구한 여인이 영영 인외人外의 괴물이어도 왕자는 그녀를 계속해 찾았을까? 글쎄. 그가 이상성욕자가 아닌 이상에야 긍정하기는 어렵다. 아니, 혹여 그가 물고기를 사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폭군이 아니고서야 그녀에의 사랑을 이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생령들로 짜여진 왕관의 무게를 짊어진 자의 숙명이란 무릇 그러하니. 광활한 세상에서 영혼의 짝을 찾아 단번에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에겐 일생일대의 행운이지만 유즈하라와 아카시에게는 지극한 불운이었다. 그들은 첫 만남을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기적이라 평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은 만남의 운명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랑을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실 최초의 인어는 왕자에게 버려진 것이 아니다. 아카시는 유즈하라를 배반한 적이 없다 배반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키세 료타는 미래에 다녀왔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마지막 숨이 멎는 날까지 그녀를 가슴속에 추억하고 있었다, 영원히. 이제 모든 이가 경외로 바라보는 보스에게서 키세는 위엄이 아닌 유령을 본다. 조직의 선두라는 왕좌와 평생의 인연일 연인, 양립불가한 두 가치의 사이에서 그 무엇도 버리지 못해 결국 자신을 죽이는 것을 선택한 초라한 남자의 뒷모습을. 물거품이 되어 소멸할 영과 천국에 들지 못할 자살자의 혼이라니 이 얼마나 처절한 희곡의 엔딩인가.



F


그들은 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 필연적 결말을 직감했다. 비극,



5


 닿을 수 없는 사랑을 홀로 삼키는 것보다 사랑을 함께 나눌 때 감각의 붕괴는 더욱 급속도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유즈하라는 과거 사랑의 첫으로 아카시를 겪었을 때에는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으나 키세와의 만남이 길게 이어지고 난 뒤부터는 매 순간이 장례였다. 문득 남편의 장례식에서 부인이 쓰는 베일과 결혼식 신부의 면사포가 비슷하게 느껴져 조소한다. 둘 모두 쓸 일 없이 생을 마감할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우스웠다. 요 근래 유즈하라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것은 사유보다는 사색에, 사색이라기엔 공상에 가까워 삶에는 하등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이전엔 없던 모습, 계절변화에 감정적으로 예민해졌다는 증거이다. 그녀는 가을을 타고 있었다. 계절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다. 의미가 부여된 시간은 인간의 유한성이 감성과 맞닿아 만드는 저물어가는 삶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낭만적이다. 낭만같은 부드러운 단어는 사랑에 젖은 가슴을 쉬이 간질인다.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는 언어가 예술이란 사실은 우리에게 달콤한 독으로 느껴진다. 독을 치사량까지 들이킨 지 오래되었다. 감각은 이미 왜곡되고 변형되어 비틀려 있다.


 유즈하라 유카리는 금일 반나절 내내 망상에 골몰했다. 햇살이 지상을 건조하게 태우는 오전 중의 한낮부터 어둠이 내려앉아 찬 기운으로 대기에 청량감을 더하는 저녁까지, 온종일 물 속에 잠겨있다는 생각. 현관을 열고 들어온 사람에게 무겁다고, 호흡도 전신도 온통 물을 먹어 답답하다고 물기 가득한 음성과 눈빛으로 말했을 때 그 사람도 맞닿은 부분에서부터 천천히 물기가 스미는 착각을 감각하였다 우리는 함께 잠겨간다. 섹스하고 싶은 기분이지만 그래서는 안 돼. 아마도 호흡부족으로 죽을 거야. 당신도 그럴걸? 하지만,  푸르게 어둠이 내려앉은 현관 복도에서 그녀는 문을 구원인 듯 목숨줄마냥 잡고 저를 쳐다보았다 수분을 넘어 물이 질척하게 엉겨든다 ―죽고 싶으면 그래도 돼 난 너에게 나를 담글게.  뭍에 존재하는 물의 산물을 찾는다 맨살 어류의 등을 따라 유선형을 덧그리자 손끝에 포유류의 척추가 마디마디 걸렸다 곡선을 따라 옆선을 쓸면 곤충도 새도 아닌 것의 날개가 비닐같이 파르르 떨며 부닥쳐온다. 날치의 꿈이다. 우리는 수족관 하나 없는 육지에서 바다를 상상하고 가을 장마가 지난 건조에서 열대 여름의 우기를 겪는다 뭍에서 하늘을 바라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물에서 하늘을 꿈꾸었던 날치처럼. 이 순간 우리는 역설이자 예술이 된다.


 빈틈없이 맞물린 질척한 붉음 사이 넘나드는 숨결에서 언젠가의 그녀의 대사를 되감아 듣는다. 무대 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예술가들 있잖아요 난 그게 웃기다고 생각해 죽을 곳을 정하고 원하는 말들을 들으면 아주 웃겨 죽을 것 같아 그런데 때로는 조금 부럽기도 하여요. 알잖아요, 우리는 죽음에 대한 꿈을 꿀 수 없다는 걸.  영사기로 돌아가는 세피아의 필름마냥 과거의 기록이 몸을 떨며 스쳐 지난다. 감상일지 회상일지 모를 것을 마친 그는 그녀의 연기에 감화된 듯 바로 지금 여기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복상사든 무대 위의 예술적인 죽음이든 아무려면 상관없다, 확실히 함께일 때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그것은 인간의 의지다. 하지만 질식은 끝끝내 일어나지 않을 테다. 행위가 끝나고 오늘이 끝나도 결국 죽지 못해 내일로 끌려가듯 살아가는 우리는. 왕자에게 버림받아 물거품이 될 날개를 단 인어 한 쌍. 여기에 왕자는 없다. 저주받은 성애性愛의 현장에 공허한 자유만이 울려퍼진다. 해가 불타올라 붉음을 지나 창염을 두른다 지옥불보다 달큰한 고온의 밤이다




6


 먼 훗날 아카시는 제 목을 짚어볼 것이다 귀 뒤로 찌릿한 감각이 들어 만져본 곳 그 손끝에는 살갗 찢어져 아가미가 돋을 테다



F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겠지, 필연적으로




'❤️🧡💛 >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월간농구 7월호 🏀  (0) 2019.09.08
💞 월간농구 6월호 🏀  (0) 2019.09.08
🌆 쪽빛의 심연  (0) 2019.08.23
🌇 Dies irae  (0) 2019.07.17
🌇 Gifted AU  (0) 2019.07.13
COMMENT
SKIN MADE BY
MYOYOUN